나눔터

Community

내 영혼의 산책

사랑의 온도

Author
아름다운교회
Date
2020-05-20 04:44
Views
298
저는 드라이브 하는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GPS가 아직 나오지 않았던 시절에 어느 월요일에 텍사스에서 10번 프리웨이 west 방향으로 드라이브를 하기 시작 했습니다. 찬양을 들으며 광활한 대지를 구경하면서 10시간을 넘게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프리웨이에서 내려서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쯤 왔는지 확인을 하였습니다. 약 30분을 더 가면 엘파소라는 지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엘파소는 텍사스에서 뉴 멕시코로 넘어가는 텍사스의 마지막 동네이기도 합니다. 지도를 통해 저의 위치를 확인한 결과 집으로 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를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분주한 일상의 삶과 매번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신앙 생활의 패턴 가운데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져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채 이런 저런 외적인 신앙 활동과 사역에 몰두 할수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진채 이루어지는 외적인 신앙 활동과 사역은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해 드리기에는 부족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외적인 신앙 활동과 사역 자체에서 만족함을 찾으려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밥상에 차려진 음식은 즐기면서 그 음식을 차려준 사람과는 아무런 관련없이 살아가는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천국 밥상에 차려진 메뉴 이전에 그 천국 밥상 메뉴를 제공해 주신 하나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제사 보다는 인애를 원하고 번제 보다는 하나님을 아는것을 원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사와 번제를 근본적으로 원치 않는것이 아니죠.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것이 결여된채 드리는 제사와 번제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사와 번제는 기쁘시게 받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좋아 하고 만족해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 하시지 않는 그 어떤 제사나 번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 사실은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주님 앞에 서는 날이 가까이 다가오면 올수록 더욱더 명확하게 인식되어질 것입니다. ‘인애’는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 입니다. ‘헤세드(חסד)’는 ESV(English Standard Version) 영어 성경에서는 ‘steadfast love’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한글 새 번역에서는 ‘사랑’으로 번역 하였습니다. ‘헤세드(חסד)’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의미하는 단어 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 하신 ‘헤세드(חסד)’는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랑의 마음을 의미 합니다. 즉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것은 제사 의식 이전에 모든 활동과 사역 이전에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아는것을 같은 선상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안다는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친밀히 사귐으로 체험적으로 안다는것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사귀는 체험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저는 매 주일 저녁 시간에는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아내와 함께 식탁에 앉아서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서로 나눕니다. 요즘은 저의 큰딸이 COVID 19 관계로 재택 근무를 하고 있어서 가정예배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말씀 나눔 가운데 저희 세 사람이 서로의 깊은 이야기와 부족함들을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나누었습니다. 정말 친밀하고도 인격적인 체험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부지간에도 가장 친밀한 인격적인 사귐을 나누는 시간은 찬양과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서로 나누는 시간 입니다. 아무리 결혼을 해서 수십년을 같이 살았어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말씀을 통해서 인격적 사귐을 가지기 전에는 서로의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십년 오랫동안 함께 살기는 살았는데 여전히 서로를 잘 모르는 셈이지요.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 사귐을 통해 하나님을 마음으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나게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십자가 입니다. 저는 기독교가 종교로 인식되거나 학문으로 인식되는것을 정말 원치 않습니다. 성경은 기독교의 핵심을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인간의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를 깨뜨렸고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를 회복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줄기차게 성경 전체를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매일 잊어 버리기 때문에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들어야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만약 기독교를 종교나 학문의 세계로 이해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이미 교회학교 유치부때 들었고 예수 처음 믿을때 들었던 것이라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진지하게 서지 않습니다. 찬송가 주 달려 죽은 십자가의 첫 소절에서 ‘주 달려 죽은 십자가 내가 생각할때에’라고 부릅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를 스쳐 지나는 가는데 그 십자가 앞에서 모든것을 잠시 멈춰 세우고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빠진 예배가 되고 하나님을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인격적으로 체험하므로 아는 친밀함 없이 드리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옛날에 이미 다 알고 있는것으로 여기고(그 정도쯤이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높아진 마음) 계속적으로 새로운것을 찾아 나서는것이 기독교의 정수일까요? 오늘날 일반 스펙(Spec)이 뛰어난 사람들 가운데 사도 바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그리 많치 않을 것입니다. 그 만큼 사도 바울의 일반 스펙은 정말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었던 사도 바울이 무엇을 추구했었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라디아서 6:14).

사도 바울이 그의 개인 신앙에서 으뜸으로 추구하던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안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인격적인 체험을 날마다 가졌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사역의 핵심이었고 전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인격적인 체험을 날마다 가졌기 때문에 사역 초기때 보다 사역 말기에 갈수록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은 더욱 순수해졌고 더욱 열정적이게 되었습니다. 세상 일은 어느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하면 익숙해지고 노련해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채 익숙해져 가고 노련해져 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얼마나 많은 활동과 사역을 하고 있는가 하는것으로 평가 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십시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더욱 친밀해지고 있는가에 따라 스스로를 평가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평가 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일 것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고, 그 누구도 하나님을 예배할수 없고, 그 누구도 직분자(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로 교회를 섬길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세상 앞에 선포할 복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갈보리 언덕위의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쏟아내며 절규하며 죽어가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요. 그분이 종교의 선구자였습니까? 그분이 학문을 추구 하였습니까? 화려한 공적을 남기려던 분이었습니까? 그 어느것도 아니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나 같은 죄인 한 사람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신 온 세상의 구주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탁월한 종교가도, 탁월한 학자도, 화려한 공적을 남긴분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구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의 구주가 되어 주신, 나의 구주가 되어주신, 나의 구주가 되어주신…...그분께 눈길을 맞추고 묵상의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Total 0

Total 59
Number Title Author Date Votes Views
59
New "진리와 함께 하는 운명"
아름다운교회 | 2020.05.28 | Votes 0 | Views 31
아름다운교회 2020.05.28 0 31
58
사랑의 온도
아름다운교회 | 2020.05.20 | Votes 0 | Views 298
아름다운교회 2020.05.20 0 298
57
“좁고 협착한 길 걷는것 맞습니까?”
아름다운교회 | 2020.05.17 | Votes 0 | Views 346
아름다운교회 2020.05.17 0 346
56
안락한 삶 vs 동행하는 삶
아름다운교회 | 2020.05.05 | Votes 0 | Views 486
아름다운교회 2020.05.05 0 486
55
“참된 회심자 한 영혼”
아름다운교회 | 2020.04.28 | Votes 0 | Views 540
아름다운교회 2020.04.28 0 540
54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연합”
아름다운교회 | 2020.04.24 | Votes 0 | Views 519
아름다운교회 2020.04.24 0 519
53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아름다운교회 | 2020.04.15 | Votes 0 | Views 543
아름다운교회 2020.04.15 0 543
52
진지한 인생
아름다운교회 | 2020.04.07 | Votes 0 | Views 497
아름다운교회 2020.04.07 0 497
51
“죽음 조차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름다운교회 | 2020.03.31 | Votes 1 | Views 552
아름다운교회 2020.03.31 1 552
50
“사랑(예수님)은……”
아름다운교회 | 2020.03.24 | Votes 0 | Views 621
아름다운교회 2020.03.24 0 621

교회앨범

4500 Buena Vista Rd Bakersfield, CA 93311 연락처 832-867-5764 (담임목사)
© 2018 The Beautiful Church of Bakersfield.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