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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산책

진지한 인생

Author
아름다운교회
Date
2020-04-07 02:16
Views
499
시편 기자는 고난을 지나면서 “주의 종을 선대 하셨나이다”(시편 119:65)라고 말하였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과 상심과 절망을 가져다 주는데 선대라니요? 이성의 논라와 감정으로는 납득할수 없는 소리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이 전하는 진리의 소리 입니다. 성경이 전하는 진리의 소리는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으로는 결코 납득할수 없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진리는 사람들에게 이성과 감정의 이해를 요청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진리는 성령이 조명 하심을 진리를 믿음으로 ‘수락’하라고 요청 합니다.

고난의 시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이유는 고난의 상황을 이성과 감정으로 이해 하려고 접근하기 때문 입니다. 고난의 골짜기가 깊어질수록 이성과 감정으로 이해 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 하는지를 주목 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인생을 결코 대충 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8).

하나님은 업신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는것과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을 연결하여 생각해 보십시요. 인생에 대한 어떤 원리를 발견할수 있습니까? 인생은 어떻게 살든지 하나님이 철저하게 판단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냥 세월따라 지나가는것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이쯤 되면 결코 인생은 대충 살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인지할수 있습니다. 인생을 대충 산다는것은 성실하지 못하게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이 판단 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곧 인생을 대충 사는 것입니다.

판단자 되시는 하나님을 인지하면 인생은 정말 진지한 것입니다. 인생을 진지하게 바라볼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는 고난을 통과할때 입니다. 고난의 시기가 찾아오면 평상시 보다 인생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그둔다면 그대로 거두는것이 인생이라면 무엇을 심어야 하나님의 판단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고 요청 합니다. 성령으로 심으면 나중에 성령으로 부터 영생을 거둘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씨앗 심기의 연속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씨앗의 종류는 두가지로 명확 합니다. 육체의 씨앗과 성령의 씨앗 입니다. 하나님이 옳다 인정 하시는 씨앗은 성령으로 심는 씨앗 입니다. 매일 세상이라는 들판에 들어가면서 성령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성령으로 씨앗을 심을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해답을 갈라디아서 6장 14절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 하니라”(갈라디아서 6:14). 성령으로 심은 씨앗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기독교는 고난의 때에 대단한 무엇을 준비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종말의 때에도 대단한 무엇을 준비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오직 한가지를 요청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가지게 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편이기 때문 입니다. 그 어느것으로도 죄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하는것은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만이 죄를 범한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되면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고난앞에서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종말의 때에 찾아올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준비하기 위해서 성경은 매우 간단한 요청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라는 요청 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의 고난과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준비하는 최선이며 전부 입니다. “오 주여, 이 진리를 그냥 지나치지 말게 하시고 성령이여 깨닫는 은혜를 덧입혀 주옵소서”

갈라디아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것을 준비해야 된다고 가르치려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고 사도 바울이 쓴 서신서 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기독교의 기초부터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충분하다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기독교 신앙의 형태는 다양할수 있지만 길은 유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잘 들어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유사한 길도 안됩니다. 유사한 길은 보기에만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기독교 진리에는 유사한것이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진리는 흑과 백의 구분이 명확 합니다.

자,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떻게 자랑할수 있는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후반부 말씀을 보십시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 하니라”(갈라디아서 6:14).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세상’에 대한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어떤 곳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세상에 대한 의미를 밝혀 놓았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일서 2:16).

세상을 어떻게 규명하고 있습니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리키고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욕심을 추구하는것을 가리키고 이생의 자랑은 자신의 의와 공로에 대한 자랑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두가지를 말했습니다. 세상이 바울 자신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또한 바울 자신이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바울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눈에 보이는 욕심을 추구하고 자신의 의와 공로를 자랑하는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바울에 대하여 더이상 흥미가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것을 세상에 바울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가운데 살아가기전에는 세상이 육신의 즐거움과 눈에 보이는 욕심을 추구하고 자신의 의와 공로를 자랑하는 바울에 대하여 굉장히 흥미가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울에 대하여 더이상 흥미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의미는 또한 이렇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살아가면서 부터 육신의 즐거움과 눈에 보이는 욕심을 추구하는것과 사람들의 의와 공로를 자랑하는 가치관을 가진 세상에 대하여 흥미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쉽게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세상이 더이상 바울에 대하여 흥미가 없고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더이상 흥미가 없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세상이 자신에 대하여 죽었고 자신이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과 세상이 서로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가 더이상 서로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된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 입니다. 고난의 때는 현실적으로 잃어 버리고 손실이 나고 상처를 입는 시기 입니다. 육신의 즐거움과 눈에 보이는 욕심을 추구하고 자신의 의와 공로를 자랑하는 세상의 가치관은 고난의 때에 현실적으로 잃어 버리고 손실나고 상처를 입는것에 대해서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더욱더 고통스럽게 한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즐거움과 눈에 보이는 욕심을 추구하는것과 자신의 의와 공로에 대한 자랑을 하는 세상에 속한 가치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흥미가 없어질때 고난의 때에 현실적으로 잃어 버리고 손실나고 상처가 감당할수 없을만큼 크지만 서서히 소화내 냅니다. 점점 더 자유로워 집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사실을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재산의 전부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의미 입니다.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전부 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전부 입니다. 현실적인 표현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재산의 전부 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고백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이 고백을 하는 자들은 매일 성령으로 씨앗을 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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